"대중, 표피적 자극에 질려… 영혼의 자극이 필요"
- 미술은 친밀한 소통을 원한다
깨부수고 자르는 것은 이제 한계
작가의 내적 체험, 타인과 공유를 서양에 '동양적 가치' 접목 절실해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이제껏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명의 징후는 정치와 경제영역은 물론 국제관계와 인터넷 공간에서도 요동치고 있음을 지난 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 같은 예술분야에서도 새로운 문명의 싹은 힘차게 움트고 있다.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는 "새 시대의 미술은 표피적인 자극이 아니라 친밀한 소통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누드 전신을 석고로 뜬 주물 작품을 런던 시내 빌딩과 워털루 브리지 등 31곳에 세우는 전시를 했다. 온몸으로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런던 시민들은 벌거벗은 그의 작품에 옷을 벗어 입혀주며 호응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그는 어느 유파에 속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신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휴머니티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가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 새 문명 새로운 미술의 흐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사람들은 감각적 미술에 질려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표피적인 자극이 아니다. 오늘날 미술은 머리로 구사하는 수사학은 지극히 발달해 있지만, 몸과 몸의 인간적 관계는 사라져가고 있다. 새로운 미술에서 요구되는 것은 친밀성의 소통이다."
세계적인 작가들 중 가장 철학적이라 꼽히는 영국의 대표적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58)는 단호히 말했다. 그는 1994년 영국의 권위적 미술상인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했고,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설치조각전을 가져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의 조각과 설치작업은 영혼을 흔드는 소통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업을 보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역 근처 대규모 작업장을 찾았다. 엄청나게 큰 은색 철판 문을 밀고 들어서자 곰리의 스튜디오가 압도적인 스케일로 나타났다. 벽에는 자신의 맨 몸을 주물(鑄物)로 만든 작품이 그의 분신이나 되는 것처럼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당신은 직접 자신의 몸을 석고로 떠서 주물을 만드는 인체 작품을 최초로 시행했다. 이런 작업이 새 문명의 새 미술로 생각될 수 있다고 보나.
"서구의 현대미술은 정신성에 갈급해 있다. 이성과 논리의 발달로 치달은 문명과 그 미술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정신성과 내적 체험은 새 시대를 맞는 미술의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그 단초를 나는 동양의 명상에서 찾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앉은 대형 드로잉 테이블 중앙에는 엄청나게 큰 동양화 붓들이 한 질 걸려 있었다. 지극히 서양적인 조각을 위한 드로잉이 동양화 붓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작업에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어떻게 녹아 있나.
"동양에 대한 나의 첫 체험은 70년대 초 인도에서였다. 거기서 3년 동안 전문적 명상훈련을 했다. 일본, 중국그리고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나에게 동양은 사고의 근본이고 내면이다. 특히 명상은 작업 과정과 직접 통한다. 나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직접 주물로 뜨면서 나를 비우는 마음의 수련을 거친다. 그리고 이런 예술적 체험을 다수의 타인들과 나누는 것이다. 최근에는 삶의 일상적 안주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명상의 경지로 들어가게 하는 설치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그러한 것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대중이 그런 시도를 제대로 따라올 수 있나. 일반인들은 자르고 부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미술을 선호한다. 자극과 충격이 있어야 대중의 주목을 끄는 게 아닌가.
"그런 작품의 대중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이 너무 감각적 충격에 치중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중과의 소통을 다른 방식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작년 여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눈먼 빛(Blind Light)'에서 대중의 호응에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2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서 갤러리 역사상 생존 작가의 전시 중에선 최다 관객 유치를 이뤘다. 그런 현상은 이 시대의 요구, 새로운 미술의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미술의 체험이란 무엇인가.
"이제까지 지나치게 발달한 언어는 몸과 몸의 친밀한 소통을 상실하게 했다. 새 문명, 새 시대의 미술은 이러한 신체 소통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나의 전시 중 유리방 하나를 온통 새하얀 안개로 채워놓아 한 치 앞을 못 보는 상황에서 관객이 인체와 공간의 관계를 직접 체험하게 한 것이 있다. 조용한 사색적인 전시 분위기에서 관객은 때로 극단적 고독감이나 두려움을 경험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 또한 놀라운 체험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대중과 공유될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당신의 작품이 가진 어떤 특징이 새 문명의 미학과 통한다고 생각하나.
"나의 작품은 사실 밖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자아의 상태이다. 상실감에 멍하니 빠져 있거나 무력감에 압도되어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내 조각이 가진 특징이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당당하게 주체를 강조하던 인체 조각의 암묵적 전통을 뒤집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미적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까지의 미술에서 추구하던 나와 타인의 관계를 다르게 인식한다."
―당신의 미술이 추구하는 것이 '친밀성의 소통'이라 했는데 '눈먼 빛' 전이 갤러리 밖 공간까지 연장되었다는 점도 소통과 관련되나.
"그렇다. 전시가 열린 갤러리를 중심으로 템스강 너머까지 인체 주조물 31점을 설치해서 그 도시 공간을 전시장으로 삼았다. 건물 꼭대기, 길거리, 다리 위 등에 놓인 나의 누드 조각은 친밀한 경험을 도시 전체에 노출시킨 것이다. 그 조각들에 보인 런던 시민들의 애착이 흥미로웠다. 그 조각들을 영구 보존하자는 여론이 일었고, 워털루 다리 위에 놓인 조각의 경우 지나가는 시민들이 입던 옷을 벗어 입혀주기도 했다. 친밀성을 소통하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새 시대의 미술이 드러내는 '나'는 무엇이고 또 남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라 보나.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요청해서 된 것이 아니다. '던져진 존재(thrown being)'로서의 나인 셈이다. 이것을 깊이 새기면 그러한 존재가 갖는 남과의 관계 또한 말이나 의식을 넘어 신체적이고 보다 본질적인 관계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미술은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다룰 것이다."
2008.03.0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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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운좋게 볼 수 있었던 Gormley의 Blind Light 展은 내가 봤던 모든 전시 중 가장 좋았던 전시였다. 그의 전시를 보러 온 수많은 사람들 모두 그의 작품들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더 행복해진 것 같았다.
깊은 고민에서 비롯되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치밀한 작업 공정을 거쳐 표현된 작품들은, 자극과 충격 외에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조차 찾아볼 수 없는 작품들과는 누가 봐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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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새로 오픈할 전시를 위해 오늘부터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기획전인데다 워낙 서로 다른 작품들이 섞여있다보니 좋은 것도 있지만 순 완전 씹딱구리같은 물건도 있다.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그런짓하는거, 아무리 세상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하더라도 난 싫다. 소재 때문에 과민반응하는거 아니다. 지금이 성해방을 부르짖던 시대도 아니고. 저 따위 작업이 걸려있는 화랑에서 일하기가 싫어질 정도. ㅋ레이터님조차 그가 들고온 작품(?)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지만 어쩌겠나. 그에게는 사상 최고의 빽이 있는걸.
예전에 ㅇㅈㅎ 교수님이 애니 수업 마지막날 그런 얘기 했었다. (난 마지막 영상회만 청강ㅋ)
예술과 포ㄹ노는 다르다.
예술은 보고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만 포ㄹ노는 보고나면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진다, 라고.
그러고보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갤러리에 걸리는 작품(?)들 때문에
늘어난 범죄가 한둘이 아니겠지?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건만.